2020년 4월 11일: 주님을 존중하는 참제자, 말씀을 무시하는 불신자 (마태복음 27장57-66절)

🔎말씀요약

예수님을 섬기는 헌신(27:57-61)

십자가를 통해 변화된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큰 부자였고 빌라도를 개인적으로 만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자신의 부와 기득권 때문에 공개적으로 섬기지는 못했습니다.(요19:38) 그랬던 그가 십자가 사건을 겪고 변화되어 빌라도에게 찾아가 당당히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이런 결단은 용기와 헌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권력층의 미움과 핍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시신이 새 무덤에 안치됩니다. 제자는 사람들 앞에서 용기 있게 주님을 드러내고, 또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도는 자기 것을 내어 드리며 주님을 섬기는 순전한 헌신으로 더욱 견고해집니다.

말씀에 대한 어리석은 반응(27:62-66)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듯, 기억하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속이던 자(63절)로 인식할 뿐 부활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시신을 훔치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속임수를 쓰면 더 큰 소란이 날 것이라며 염려합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경비병을 시켜 돌문을 인봉하고 굳게 지키게 합니다. 믿음의 고백은 있지만 정작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제자들이나, 말씀을 알지만 믿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신앙 성장에 필수 요건입니다.

2020년 4월 10일: 죽음으로 생명을 선물하신 하나님 아들 (마태복음 27장 45-56절)

🔎말씀요약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 고통 27:45~50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정오가 되자 어둠이 임했고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어둠과 고통의 심연에서 피를 토하듯 말씀하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46절). 육신의 고통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영적 고통까지 가중된 것입니다. 이때 한 사람이 신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는 거부하셨지만(27:34), 타는 갈증 속에서 고통을 가중시키는 신 포도주는 받으시고 극도의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백부장의 고백 27:51~56

예수님의 죽음은 곧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지신 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원래 그 휘장은 힘센 말이 양쪽으로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만한 두꺼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과의 막힌 담을 허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땅이 흔들려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며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이를 본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황제 외에 신이 없다고 서약하고 충성을 맹세한 로마의 백부장이지만 눈앞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길을 열었고,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이 되었습니다.

2020년 4월 9일: 고발과 불법 재판,침묵 속에 빛나는 순종 (마가복음 15장 1-15절)

🔎말씀요약

침묵하시는 예수님 15:1~5

예수님의 체포와 재판은 꼭두새벽에 벌어졌습니다. 재판은 ‘즉시’, ‘곧’ 신속하게 진행이 되었고(1절), 어떤 죄목도 발견할 수 없어서 신성 모독이라는 명목을 씌우는 등 문제가 많은 재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형 집행권이 없었기에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 집행을 요구합니다. 대제사장들은 여러 죄목을 꾸며 내서 예수님을 고발하고 빌라도는 심문을 계속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왕임은 당당히 시인하시지만 고발에 대해서는 침묵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도리어 빌라도가 당황합니다. 진실은 아무리 침묵해도 감출 수 없고, 거짓은 그 어떤 소음으로도 덮을 수 없습니다.

비겁한 빌라도 15:6~15

아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바른 신앙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공의롭게 재판을 진행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넘긴 것을 알았습니다(10절). 심지어 무리에게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14절)라며 발끈합니다. 언뜻 빌라도가 의로워 보이고 예수님을 편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면서 그의 얄팍한 동정심도, 뒤늦은 깨달음도 다 묻혀 버립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15절) 공의를 저버립니다. 아는 것, 공감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진리 앞에서 공의를 저버리지 않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20년 4월 8일: 내 뜻을 내려놓는 절대 순종의 기도 (마가복음 14장 32-42절)

🔎말씀요약

아버지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 14:32~36

기도는 사명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겟세마네는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에게 고독의 자리요 마지막 소망의 자리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예수님 내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한 사명 성취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33절),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4절)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심경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갈등 가운데서 위대한 기도를 하십니다. 인간적인 소원은 고난의 잔을 옮겨 달라는 것이지만, 기도의 결론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절)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온전한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사명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육신에 굴복하는 제자들 14:37~42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힘든 기도의 시간을 보내신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육신의 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순간에 기도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달리, 베드로는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기도로 준비되지 못한 베드로는 잠시 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 인생에서 가장 무력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맞게 됩니다. 반면 기도로 무장하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당당히 나아가십니다(42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분이 어쩔 수 없이 당한 수동적 비극이 아니라, 그분의 능동적 주도로 진행됩니다. 강력한 기도가 선행될 때 우리는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 없이는 가장 사소해 보이는 욕구에도 쉽게 무릎 꿇고 맙니다.

2020년 4월 7일: 참주인을 잊은 자에게는 그분의 심판이 임합니다 (마가복음 12장 1-12절)

🔎말씀요약

은혜를 잊은 악한 농부들 12:1~8

자신의 참주인을 잊어버리고 주인 노릇 하려는 것이 죄입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는 성전 정화 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항변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의 은혜를 잊어버린 악한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선지자들)뿐 아니라 그 아들(예수님)까지 무참히 죽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자신에 대한 그들의 음모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반역임을 깨우치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참주인을 알고, 자기 백성을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버려진 돌이 머릿돌 되다 12:9~12

주인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하면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포도원 주인(하나님)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권세 있는 존재입니다. 주인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애초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욕심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건축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모퉁이의 머릿돌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10절).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돌을 버린 것처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업신여겨 죽이지만, 그분은 모퉁이의 머릿돌처럼 요긴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모든 믿는 이의 주(主) 되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인생의 참주인을 기억하고 그분을 삶의 초석으로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2020년 4월 6일: 예수님께 배우는 기도에 관한 교훈 (마가복음 11장15-25절)

🔎말씀요약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11:15~19

공간은 사용하는 사람 혹은 목적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공간이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이들에게 분노하십니다. 성전 권력자들은 희생 제물을 팔아 이윤을 챙기며 가난한 자들의 등을 치는 강도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결한 은혜의 장소를 부정한 탐욕의 장소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성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예루살렘 성전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성전 시대가 열렸습니다(요 2:19).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입니다(고전 6:19~20).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되었기에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11:20~25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입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아닌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예수님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제자들은 그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기도에 관한 교훈으로 연결시키십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첫째, 응답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입니다. 둘째, 걸림돌이나 막힘이 없는 관계입니다. 이는 진정성 있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는 말로만이 아닌 우리의 전인격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믿음의 기도에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